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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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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교의 성립
 
불교는 기원전 6세기경 싯다르타 고타마(Siddhārtha Gautama)에 의해 현재의 인도 동북부 지방과 네팔에 있던 마가다(Magadha) 왕국을 중심으로 성립하였다.
싯다르타는 카필라 성주(城主) 슈도다나(Suddhodana) 왕을 부친으로 하고 마야(Maya) 부인을 어머니로 하여 태어났으며, 샤카 족에 속하는 크샤트리아 계급이었다. 깨달음(覺 · 각)을 성취한 후에는 "깨달은 자"라는 뜻인 붓다(불타 · 부처)라는 칭호를 더하여 "고타마 붓다(Gautama Buddha)" [1], 또는 "샤카 족의 성자"라는 뜻인 샤카무니(석가모니 · Śākyamuni) 혹은 석존(釋尊)이라고 불리었다.
고타마 붓다의 출생지는 룸비니(Lumbini)였고 성장지는 카필라 성(Kapilavastu · 迦毘羅城 · 가비라성)이었으나 불교가 종교로서의 요건을 갖추고 역사에 기록되기 시작한 것은 마가다 왕국에서였다. 고타마 붓다의 종교적 활동인 수도(修道) · 깨달음(正覺 · 정각) · 포교(布敎) 등이 지금의 인도 비하르 주에 해당되는 마가다 왕국를 중심으로 전개되었기 때문에 출생지나 성장지보다는 마가다 왕국이 불교 발생의 중심지로 여겨지고 있다.
 

시대적 배경

불교가 일어날 당시 인도베다(Veda)와 우파니샤드(Upanisad)에 근거를 둔 브라만교가 지배하는 사회였다. 당시 브라만교는 우주의 궁극적 근원인 브라만(Brahman · 범 · 梵)과 개인에 내재하는 아트만(Atman · 아 · 我)이라는 두 원리가 동일한 것이라는 범아일여(梵我一如)의 사상을 가지고 있었다. 또 인간의 행위는 전생(前生)의 카르마(Karma · 업 · 業)에 의해 지배된다는 교의를 가졌으며, 현재의 행위의 결과는 미래의 행위를 결정한다는 윤회 사상(輪廻思想)을 지니고 있었다. 당시의 사상가나 종교가들은 윤회로부터 해탈(解脫)해야 한다는 것을 이론이나 실천 수행을 통해 주장하였다. 브라만교카르마 · 윤회 · 해탈의 사상은 후대 인도 사상의 근간을 이루는 것으로 불교 역시 이러한 인도의 전통적 종교 · 철학 사상을 근저로 하여 새로운 종교 사상으로 출현하였다.
 

붓다의 수행과 깨달음

싯다르타도 "깨달음(無上正等覺 · 무상정등각 · 阿耨多羅三藐三菩提 · 아뇩다라삼먁삼보리 · Anuttarā Samyaksaṃbodhi)"을 얻기 전까지는 이러한 종교적 풍토 속에서 브라만교의 수행 방법을 따랐다. 싯다르타는 29세에 부인인 야쇼다라(Yaśodhara)와 아들 라후라(Rāhula)를 버리고 출가(出家)한 후 선정(禪定)과 고행(苦行)을 택하여 수행하였는데 이들은 당시에 유행되었던 수행법이었다.
싯다르타는 출가 후에 알라라 칼라마(Alara Kalama)와 우다카 라마푸타(Uddaka Ramaputta)에게 사사하다가 만족하지 못하여 스승을 버리고 5명의 수행자와 함께 고행의 길을 떠나 6년의 고행을 하였다. 하지만 싯다르타는 6년의 고행을 통해서도 깨달음을 성취하지 못하였으며, 이에 고행을 버리고 중도(中道)의 길을 택하였다. 이윽고 마침내 싯다르타는 35세의 해 12월 8일 이른 새벽에 부다가야(Buddhagaya)의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음"을 성취하여 생 · 노 · 병 · 사의 생사윤회(生死輪廻)의 근원을 단멸(斷滅)하고 열반(涅槃)의 세계를 체현하였다.
 

불교의 성립

고타마 붓다깨달음의 내용은 고(苦) · 집(集) · 멸(滅) · 도(道)의 사성제(四聖諦)와 생사윤회의 모습인 연기(緣起)이다. 고통(苦)의 원인인 집착(集)을 극복 또는 제거(滅)하여 생사윤회를 벗어나는 방법(道)으로 제시된 것이 정견(正見) · 정사(正思) · 정어(正語) · 정업(正業) · 정명(正銘) · 정정진(正定進) · 정념(正念) · 정정(正定)의 팔정도(八正道)이다. 고타마 붓다가 깨달은 진리를 (法 · 다르마)이라 하며 그는 이 법을 펴기 위해 녹야원(鹿野園 · 사르나트)으로 가서 다섯 수행자에게 최초의 설법을 하고("초전법륜 · 初轉法輪") 그들을 제자로 삼았다. 이로써  ·  · 삼보(三寶)가 갖추어지고 불교는 비로소 하나의 종교로서 교조(敎祖) · 교리(敎理) · 교단(敎團)을 갖추고 전파되기 시작하였다.
 

원시 불교의 발전

고타마 붓다는 45년 동안 교화 활동을 하며 승단을 이끌다가 80세에 쿠시나가르에서 입멸하여 반열반(般涅槃 · Parinirvana)에 들었다. 그 후 승단은 제자인 마하가섭 등이 중심이 되어 붓다의 을 유지하게 되었다.
 

경전의 결집

불멸후, 곧 붓다의 가르침을 정리하게 되었는데, 붓다가 듣는 사람의 근기에 따라 맞추어 설법한 것("수기설법 · 隨機說法")을 결집을 통해 경전으로 편집하였다. 이것을 제1회 결집이라 한다. 라자기르(왕사성)에 500명의 비구들이 모여 마하가섭을 사회자로 하고 우바리을, 아난다을 암송하여 붓다의 설법을 정전화(正典化)하였다. 그 후 불교는 마가다 왕국을 근거지로 여러 도시의 왕과 제후 그리고 일반 서민의 귀의를 얻으며 각지로 전파되어 갔다.

 

아소카와 불교의 전파

아소카 왕이 불교를 포교한 지역
기원전 317년경 찬드라굽타(Chandra Gupta)에 의해 인도 최초의 통일 국가인 마우리아 왕조가 성립되고 제3대 왕 아소카가 즉위한 후 불교는 비약적으로 팽창하여 캐시미르간다라 지방을 비롯한 인도 각 지역 · 그리스의 식민지인 박트리아 · 스리랑카(실론) · 미얀마(버마) 등 국외로까지 전파되었다. 특히 스리랑카에는 아소카 왕은 자신의 아들 마힌다(Mahinda)를 보내 불교를 전파했다. 아소카 왕은 열렬한 불교 신도로서 '법(法)인 진리'에 의한 통치를 지도 이념으로 삼는 등 불교 발전에 많은 공헌을 하였다.
 

부파 불교 시대

상좌부와 대중부의 분열

싯다르타가 입멸한 후 100년이 지나자 계율(戒律) 해석을 놓고 전통적 보수파와 진보적 자유파가 대립되어 두 개의 부파(部派)로 갈라졌다. 전통적 보수파를 상좌부(上座部 · Theravada · 테라바다)라 하였고 진보적 자유파를 대중부(大衆部 · Mahasamghika · 마하상기카)라 하였다. 바이샬리(Vaisali · 毘舍離 · 비사리)에서 비구계(比丘戒)로 10사(事)를 두고 합법(合法)을 주장하는 측과 비법(非法)이라고 반대하는 측이 대립되어 분열되었다. 이를 근본2부의 분열이라고 한다. 비법을 주장하는 측이 700명의 비구를 모아 집회를 열었는데 이것을 제2회 결집이라 한다.
 

소승 20부

근본2부의 분열이 가져온 분열의 기운은 교리상의 견해, 지도자간의 대립, 지리적 조건 등으로 인하여 더욱 심화되어 붓다의 입멸 후 약 200년 뒤에는 대중부 계통으로부터, 그리고 그 뒤에 이어서 상좌부 계통으로부터 교단의 파생적인 분열이 촉진되었다. 이에 따라 서력 기원을 전후하는 시기에는 18-20개 정도의 부파를 형성하였다.
이 여러 갈래로 분열하는 모습과 파의 이름 그리고 분파의 수에 관하여는 여러 설이 있다. 부파 발생의 주된 원인은 계율의 해석에 관한 학설 상의 차이에 있었지만, 학설보다는 지도적 장로(長老)를 중심으로 한 체제가 달랐거나 지리적으로 너무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새로운 부파를 형성하는 일도 생겼다. 대표적 부파로는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 · 설산부(雪山部) · 독자부(犢子部) · 화지부(化地部) · 음광부(飮光部) · 경량부(經量部) 등이 존재하였다.
일반적으로 소승20부로서는 대중부 계통의 대중부(大衆部) · 일설부(一說部) · 설출세부(說出世部) · 계윤부(鷄胤部) · 다문부(多聞部) · 설가부(說假部) · 제다산부(制多山部) · 북산주부(北山住部)의 9부와 상좌부 계통의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 · 설산부(雪山部) · 독자부(犢子部) · 법상부(法上部) · 현주부(贅胄部) · 정량부(正量部) · 밀림산부(密林山部) · 화지부(化地部) · 법장부(法藏部) · 음광부(飮光部) · 경량부(輕量部)의 11부, 합계 20부를 들 수 있다. 이들의 성립 시기는 대략 서력 기원 전후였을 것으로 보인다.
 

부파 불교의 성격

이와 같은 불교의 부파적 전개("부파 불교")는 외적 확대와는 달리 성립 당시와 같은 순수성을 잃고 (律)과 (經)에 대한 훈고학적인 주석학에 빠졌다. 즉, 아비달마(阿毘達磨) 불교가 발달되어 불교는 승원(僧院) 중심, 출가 중심의 학문 불교로 변화하고, 따라서 대중성을 잃었다. 또 일부에서는 저급한 미신적 신앙에 친화감을 갖게 되어 불교는 본래의 탄력을 잃고 말았다. 이러한 경향에 대해 진보적 입장을 대표하던 대중부 및 재가(在家) 불교도가 중심이 되어 불교 본래의 모습으로 복귀하려는 대승 불교 운동이 시작되었다.
 

대승 불교의 성립과 발전

2세기 간다라에서 제작된 미륵보살 입상
쿠샨 제국(Kushan Empire, 月支, 월지: c. 60-375)의 영토: 점선은 카니슈카(Kanishka, 迦膩色迦, 가니색가: 재위 127-151)왕 때의 최대 판도

 

인도의 초기 대승 불교

대승 불교의 성립

대승 불교가 성립된 것은 기원전 1세기경이나 이 움직임의 태동은 그보다 훨씬 전부터 시작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대승 불교의 대두로 인하여 이전의 6세기 간에 걸친 불교를 통칭하여 소승 불교라 불러 대승 불교와 함께 오늘날까지 불교의 성격을 규정하는 2대(二大) 유파로 간주하게 되었다.
그러나 대승 불교의 대두로 소승 불교는 쇠퇴 · 소멸의 길을 달린 것이 아니라 소승 불교의 부파들은 서로 정통을 주장하며 계속 부파적 발전을 하여, 스리랑카와 같은 남방 국가로도 퍼져갔다. 스리랑카의 경우 기원후 4-5세기 동안 부다다타(Buddhadatta), 부다고사(Buddhaghosa · 覺音 · 각음)와 같은 일단(一團)의 학자들에 의해 수많은 주석서들이 만들어졌다. 이러한 활동이 바탕이 되어 스리랑카소승 불교미얀마 · 타이 · 캄보디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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